2025
아시아를 접근하는 회로로서 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의 <무진장 아시아(Boundless Asia)>(2025. 1. 23. ~ 2. 23.) 전시로부터 아시아를 사유할 때, 바다를 매체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다를 매체로 볼 때는, 바다는 물론이고 기술, 매체의 개념 또한 달리 설명되어야 한다. 바다는 자연이나 자원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과 바다의 교류의 역사 전체로 확장된다. 기술과 매체는 인간의 의지대로 대상을 통제가능하게 하는 방식이나 인공물이라는 틀을 벗어나 자연 사물과 상호관계 맺기로 확대된다.
바다는 인간의 역사에서 단지 공간적 배경이 아니었다. 바다는 역사에 참여해왔고 문화를 번성시켰던 매체와 같았다. 특히 섬과 반도가 밀집해 있는 아시아의 여러 지역들이 서로 교류하기 위해서는 바다와 먼저 교류해야 했다. 사람들은 해류와 바다의 기상변화를 감지해야 했고 바다를 진정시키기 위해 때로는 제사도 지냈다. 바다와의 교류는 인류의 생존방식과 문화, 역사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시아의 역사에서 바다를 인류가 착취한 자원이자 재난의 발원지로 대상화해온 것은 오히려 최근의 일이다.
아시아와 서구, 아시아를 서로 연결하는 바다로서 인도양, 아라비아해, 남중국해를 떠올려보자. 바다를 건너감으로써 영영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들이, 변해버린 물자들이 있었다. 아시아의 해양은 15세기부터 불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종교와 향신료가 오가고 항해를 위한 기술이 공유되고 또 개발되었던 장이었다. 인도양을 거치기 위해 맥주가 IPA가 되고, 남중국해를 건너 말레이시아에 온 중국인이 화교가 되듯, 바다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혹은 어쩔 수 없는 변환의 장소였던 셈이다. 그처럼 바다는 영토를 넘어 국가 간의 무역, 신대륙으로의 항해, 전쟁의 역사를 동반하는 거대한 장소이자 문화적 기호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바다는 무역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이기는 하지만, 바다를 건넌다고 해서 물자들이 변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바다를 직접 건너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공중을 날아서 여행지로 향하고 해안과 연안은 낭만적 관광지로 소비된다. 때로는 모래로 메워져 육지가 된다. 항로의 의미도 뱃길보다는 항공기가 다니는 길이라는 의미로 더 자주 쓰이게 되었다. 바다는 자연과 자원으로 추상화된다. 아시아의 바다를 경험할 수 있는 조건들이 소실되고 있다. 그래서 ‘아시아의 바다’를 다시 회복하는 작업은 바다를 거대한 장소이자 문화적 기호로 회복시키는 일이자 그리고 아시아의 역사를 사유하기 위한 매체로 만드는 시도와 같다.
아시아 지중해 아카이빙과 테크놀로지의 경험
<무진장 아시아>의 서문에도 “무진장 아시아는 역사적 고통을 고통으로만 두지 않고 연대와 접촉이 이루어지는 기쁨의 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입구를 마련하려 한다.”고 쓰였다. 「무진장 아시아」가 지향하는 바다는 곧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각인을 넘어선 아시아의 바다다. <무진장 아시아> 전시 곳곳의 작업과 아카이브 리서치 작업(1883년~1944년)에서 아시아의 역사는 바다와 함께 회복되어야 할 것으로 주어지고 있다. 바다와 함께 아시아의 역사를 상상할 때, 상처투성이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떠올리지 않을 요량은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확대해서 식민주의의 역사에 아시아가 통째로 함몰된 것으로 본다면 과잉이다. 아시아의 역사가 오직 착취와 침탈의 연속은 아니다. 이미 보편적 역사 서술이나 방법론을 비판하고 아시아적 주체와 역사를 사유하려고 시도했던 탈식민주의 이론들이 지적했던 바다. 가령 호미 바바(Homi Bhabha)는 아시아의 문화를 혼종성(Hybridity)으로 생각했다. 호미 바바의 문화 혼종성은 서구와 비서구를 대립 구도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두 가지의 교류와 충돌이 새로운 변형을 이끌어낸다고 보는 데에 핵심이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바다는 대립과 전쟁의 장소만이 아니라 교류와 혼종의 공간일 터다. 그에 따르면 서구가 인도양을 건너는 배에 실려 아시아로 들어올 때, 이미 그것은 서구가 아니었다.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시기가 비극적 역사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변종과 혼종, 아시아에 대한 낭만적 환상들이 발생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무진장 아시아>의 아카이브 리서치 작업은 그 증거들의 수집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작업은 1940년~1950년대의 신문들에서 아시아의 해양과 관련된 기사들을 모아낸다.
현재까지 동남아시아의 이미지에 기여하는 ‘남방’의 문화에 대한 기사(「매일신보」, 1942.7.30.)와 슈가 코코넛, 카복쿠와 같은 과실들에 대한 지식(「매일신보」, 1942.7.20.), 인도양의 참치 원양어선단 조직(「평화신문」, 1957.10.5.)에 대한 내용을 보면 당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펼쳐지던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아시아가 조직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시기만이 아니라 1899년 4월 28일, 러시아의 백작이 고래잡이를 하여 대한제국에서 벌금을 물린 일이 「대한매일신보」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아카이브 리서치 작업이 바다를 아시아의 역사적 관계망 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라면, 증강현실 체험은 바다의 혼종적인 관계망을 통해 아시아를 경험하는 기획으로 보인다. <무진장 아시아>는 전시 입구에 아시아의 바다를 중심에 두고 개념도를 펼쳐놓았다. <무진장 아시아>는 개념도를 증강현실로 구현함으로써 관객들과 바다를 밀착시키고 디지털 영상 작업의 이미지는 바다를 다르게 시각화한다. 그때 아시아는 국가나 민족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개념도의 갈래는 인종과 문화, 종교를 넘어 생물과 물질적, 사회적 구성물에까지 이른다. 심해에 사는 어류와 해수대, 해상에서는 항구, 무역과 물자, 범선, 정크선, 군함, 섬에는 수상가옥, 창고, 교역품과 길드와 같은 행위자들은 아시아 안에서 혼합된다. 무진장 아시아의 관계는 실제로는 개념도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빽빽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아시아의 바다를 회복하기 위한 출발일 뿐이다. 무진장 아시아의 관계망이 그러하다면, 바다를 거리가 두고 보거나 역사 속의 문자가 아니라 관계 맺을 수 있는 것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가까이 데려와야 했다.
그런 점에서 <무진장 아시아>는 신기술의 체험이나 바다의 낭만적 경험을 재현하는 전시가 아니다. <무진장 아시아>의 공간컴퓨팅 테크놀로지는 바다와 관계된 사물들을 선택하고 따라가게끔 만들어졌다. 아시아에 남겨진 바다의 흔적들-선박들, 섬, 건축양식-의 관계를 체험함으로써 고정된 자연으로서의 바다가 아닌, 역사로서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영상 작업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고혜진 작가의 「Oceanic Turn」(대양적 전회, 단 채널 디지털영상, 3분)은 인간과 해양 생물과 배가 결합해서 새로운 해양적 인간이 탄생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혼종이 탄생하는 바다의 이미지는 무진장 아시아의 개념도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며 인간과 비인간 사이, 자연과 사물 사이에 또 다른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황세준 작가의 「Submerged Circuits」(수중 회로, 단 채널 디지털영상, 3분)의 디지털 영상은 심해와 데이터라는 서로 다른 물리적 환경을 연결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깊은 바다의 이미지는 ‘데이터의 바다’라고 은유 되는 가상 공간의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바다가 지닌 경관의 이미지, 낭만적이고 풍요로운 감각을 변화시킨다. 이 영상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데이터의 흐름 그리고 끊임없이 바다를 헤매야 할 듯한 인상을 준다.
이처럼 기술 매체와 혼합되고 겹쳐진 바다의 이미지는 바다와 기술 사이 만들어진 인위적인 이분법을 허물고 있다.
바다는 기술의 막연한 희생양이나 타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매체가 된다.
그간 바다는 조형할 수 없는 자연으로 상상되었다. 견고함과 동떨어진 바다는 통제 불가능한, 유동적 이미지를 갖게 되면서 인간이 조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라 그 매체나 기술의 대상으로 오랫동안 존재했다. 그 탓으로 바다는 인간 역사와 문명의 주요 무대로 등장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배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의 한계 지점에서 육지 중심의 역사가 파국에 이른 지금, 바다는 역사에 참여해 온 가장 오래된 매체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아시아의 해산물이 풍부한 음식, 조선업의 발달, 수상 가옥들, 해안에 위치한 도시의 문화, 아시아 전역에 분포한 디아스포라와 이주민 전반의 관계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바다는 인간이라는 종이 일방적으로 통제 불가능하며 그렇기에 잠재성을 간직한 곳이다. <무진장 아시아>는 바다라는 올드 미디어를 통해 아시아의 무한한 역사로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칼럼 기고자 김서라는 미술 비평가이자 철학 연구자로, 전남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표적인 저서는 『이미지와 함께 걷기』(2024, 민음사)로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비평 및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이미지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